책소개
≪카프카와의 대화≫는 1951년 독일에서 출간하자마자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영국, 유고슬라비아, 일본 등에서 앞다퉈 소개했다. 그들은 왜 이 책에 주목했는가? 우리가 카프카에게 제기하는 질문에 대한 카프카의 대답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괴테에게 요한 페터 에커만이 있었다면, 카프카에게는 구스타프 야누흐가 있었다. 야누흐는 카프카와 처음 만났던 192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24년까지 그와 함께한 시간을 ‘사상 창고’라 부른 공책에 적었다. 그들은 노동자재해보험공사 사무실과 동료들, 문학과 글쓰기, 민족주의와 시오니즘, 신과 신앙, 예술과 영화, 유대인과 독일인, 작가와 화가, 정치와 러시아 혁명, 중국 철학, 프라하와 그곳의 교회와 궁전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이야기했다.
야누흐는 작가 카프카가 아닌 인간 카프카와 함께했던 추억을 홀로 간직하려 했다. 그러나 카프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카프카 문학의 비밀을 해명하는 열쇠가 될 수 있으며 카프카의 개성을 침묵으로 은폐해서는 안 된다는 주변의 충고에 책임감을 느끼고 카프카가 정적 속에서 수행한 진실과 진실한 삶을 획득하기 위한 격전을 우리에게 중계한다.
카프카가 현실에서 목격한 것은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절멸하는, 보이지 않는 악마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는 글로써 이 세계를 기록하고 증언했다. 독자가 자신의 글을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것에 대해 그는 독자가 눈을 감고서 현실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논박했다.
1968년 증보판을 출간하자마자 이 책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와 야누흐의 교제 사실을 몰랐고, 대화의 범위가 카프카와 가능했던 만남의 횟수를 훨씬 상회하며 이 기억이 카프카의 다른 친구보다 더 상세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의심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심은 비평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첫째로 이 책이 카프카와 관련한 모든 종류의 증언들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는 시점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둘째로 이 일이 당시 카프카 문제에서 최고 권위자인 브로트의 비호를 받으며 진행됐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마지막 동반자인 도라 디아만트는 이 책에서 카프카의 독특한 문체와 사고방식을 발견했고, 그와 재회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자평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의 생각과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책. 문학에 심취했던 17세 소년 구스타프 야누흐는 <벌레>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4년간 만나며 그와 나눈 대화를 공책에 적어 두었다. 약 30년 뒤 공책을 찾아내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이 책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독자의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카프카의 스케치, 카프카 연보, 프라하 지도를 실었다.
지은이
구스타프 야누흐는 1903년 드라우 강변 마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프라하에서 성장했으며, 프라하와 엘보겐 그리고 빈에서 공부했다. 유행음악의 작곡가를 포함해 음악가를 다룬 서너 권의 책의 저자로 프라하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주의자로 활동했다. 1968년에 프라하에서 생을 마쳤다.
옮긴이
편영수는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카프카 문학에 나타난 진실과 허위의 모티프 연구>다. LG 연암문화재단 해외연구교수로 선발되어, 카프카 전문가인 카를하인츠 핑거후트(Karlheinz Fingerhut) 교수의 초청으로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전주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카프카의 ‘파괴할 수 없는 것’ 연구 – 폴 틸리히의 ‘궁극적 실재’와 관련하여>라는 논문으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카프카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전주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서 키워드가이드(카프카, 독일 문학, 성경공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 문학의 이해≫, ≪독일 현대 작가와 문학 이론≫(공저), ≪동서양 문학 고전 산책≫(공저), 역서로는 ≪프란츠 카프카, 지상의 마지막 말들 1: 인생에 대하여≫, ≪프란츠 카프카, 지상의 마지막 말들 2: 문학에 대하여≫, ≪프란츠 카프카: 그의 문학의 구성 법칙, 허무주의와 전통을 넘어선 성숙한 인간≫(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카프카의 엽서≫, ≪카프카와의 대화≫, ≪실종자≫, ≪카프카 문학사전≫(공역) 등이 있다.
차례
이 책의 역사
카프카와의 대화
프란츠 카프카 연보
프라하 지도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당신은 하루살이들 때문에 지나치게 수고하는군요. 이러한 현대 서적의 대다수는 현대를 순간적으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아요. 이 현대 서적들은 무척 빨리 소멸하죠. 당신은 옛날 서적을 더 많이 읽어야 해요. 고전을. 괴테를요. 고전은 가장 심오한 가치를 외부로 발산하죠. 그것이 바로 영속성이라는 것이죠. 단지 새롭기만 한 것은 덧없죠. 그것은 오늘은 아름답지만, 내일은 가소롭게 보이죠. 이것이 문예의 길이에요.”
2.
“박사님,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실이 영원히 닫혀져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은 아주 가늘어지고 어두워졌다. 눈에 확 띄는 그의 목젖이 목에서 여러 번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는 잠시 자신의 책상을 짚고 있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 인생, 진실−이것들은 동일한 사실의 다양한 이름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계속 캐물었다. “우리가 그것들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체험으로 알죠” 하고 그는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가벼운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다양한 이름을 붙이고 다양한 사고 구조로 극복하려는 사실은 우리의 혈관·신경·감각을 관통하죠. 이러한 사실은 우리 안에 존재하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이 사실을 통찰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실제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비밀, 어둠이에요. 거기에 신이 거주하죠. 그런데 그것은 좋은 일이죠. 왜냐하면 보호막 같은 이 어둠이 없이 우리가 신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일치할지도 몰라요. 아들은 아버지의 왕관을 빼앗죠. 그래서 신은 어둠 속에 있어야 해요. 인간이 신에게 돌진할 수 없기 때문에, 적어도 신성을 에워싸는 어둠을 공격하죠. 인간은 혹한의 밤 속으로 불쏘시개를 던지죠. 그러나 밤은 고무처럼 탄력적이에요. 밤은 물러서죠. 그러나 동시에 밤은 계속 지속되죠. 인간 영혼의 어둠−물방울의 빛과 그림자−만이 덧없죠.”
3.
“인생은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별의 심연처럼 엄청나게 위대하고 오묘해요.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인 실존이라는 작은 구멍으로만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때 인간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죠. 그 때문에 인간은 그 구멍을 무엇보다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해요.”
내가 늘 그렇게 했던가?
모르겠다… 나는 생각한다. 오직 그런 진실에 사로잡힌 성인(聖人)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카프카 박사처럼.